검찰, 외주 줬다고 했다 번복…재판부 ‘증거 채택과 입증력은 별개’
  • ▲ 홍준표 경남도지사ⓒ홍준표 경남도지사 페이스북
    ▲ 홍준표 경남도지사ⓒ홍준표 경남도지사 페이스북

    디지털포렌식, 대검 과학수사부? 민간기업? ‘아리송’ 

    검찰, 외주 줬다고 했다 번복…재판부 ‘증거 채택과 입증력은 별개’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11차 공판이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의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은 검찰측이 제출한 자료 등에 대한 재판부의 증거 채택 여부를 가리는 자리여서 검찰과 변호인 간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11차 공판의 쟁점은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회유하려했다는 정황이 담겼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녹취록 2건에 대한 증거 채택여부였다.

    둘째는 검찰이 대검과학수사부에 의뢰해 복구했다는 윤 전 부사장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둘러싼 공방이다. 

    재판부는 녹취록 2건에 대해서는 증거로 채택했지만 복구한 문자메시지에 대해서는 8월 12일 열리는 마지막 공판에서 다시 다루기로 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변호인측은 ▲ 2건의 통화 녹취 과정에서 검찰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  ▲ 1시간 가량의 통화 내용 중 20여분 분량만이 녹취록에 들어있다는 점 ▲ 원본 파일이 없다는 점을 들어 검찰의 임의 편집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2건의 녹취록을 증거물로 채택하면서 이례적으로 “증거로 채택하는 것과 증거물의 입증력을 검토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이는 변호인측이 제기한 검찰의 녹취파일 입수 과정에 대한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엄모씨 그리고 김모씨와 각각 통화한 내용을 담은 2건의 녹취록에는 돈을 준 사실을 물어보고 조언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2건의 녹취록에 등장하는 인물과 내용은?

    먼저 엄씨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측근이긴 하지만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과도 20년 지기이다.  

    김모씨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는 친분이 없는 사이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고 윤승모 전 부사장과는 가까운 사이이다.

    이들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윤승모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지, 회유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검찰은 녹취록에 나와 있는 ‘그쪽의 의중’이란 문구를 들어 회유를 지시받은 정황이라고 주장했지만 변호인측은 대가를 지불한다는 내용도 없고 정치권에서는 이런 종류의 사건이 발생하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통째로 사라진 윤승모 전 부사장의 175건 문자메시지 

    검찰이 윤승모 전 부사장에게서 압수한 핸드폰에는 사건 발생 후 통화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그는 설암(舌癌)수술은 받은 후여서 말을 하기가 곤란한 상태였기 때문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통화를 대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4월과 5월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수천 건에 달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사안의 쟁점은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2015년 4월16일부터 5월2일 사이에 주고받은 175건의 문자메시지를 검찰이 통째로 삭제한 후 재판부에 제출한 점이다. 

    변호인측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통화 내역 및 문자메시지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밝혀냈다”며 “지난 9차 공판에서 원본 제출을 요구했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9차 공판에서 변호인측은 “이 시기에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외부 인사와 이 사건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주고받은 내용이 담겼을 가능성이 커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검찰에게 빠진 부분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검찰은 이에 대해 “개인 사생활과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부분은 뺐다”고 주장하면서 재판부에 “롯데 사건으로 압수물이 많아 디지털포렌식팀이 바빠서 시간을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10차 공판기일(윤승모 증인심문)을 27일로 연기해줬다. 

    하지만 11차 공판을 앞두고 검찰이 다시 제출한 문서에는 불과 2건의 문자메시지만이 추가됐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변호인측은 재판부에 문제의 휴대폰에 대한 증거제출 명령을 요청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미징(핸드폰 복제)을 한 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게 돌려준 상태여서 불가능하다”면서 “이미징한 파일도 이미 대검 서버에서 삭제된 상태여서 더 이상의 복원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미징 파일을 삭제한 이유에 대해 검찰은 “파일 용량이 커서 수사가 종결되면 통상 삭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제출한 문자메시지에는 윤 전 부사장의 사생활에 관련된 얘기들도 담겨져 있고 가장 민감했던 시기의 문자메시지가 통째로 삭제된 점을 감안하면 검찰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차 공판에는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지만 변호인의 반대심문을 통해 그가 검찰에 진술한 1억원을 전달한 경로와 전달 장소로 지목한 의원실에 대한 진술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관련기사 참조) 

    두 번째는 검찰이 제출한 문자메시지 복원 기록 하단에 디지털포렉식 분야 민간기업인 H사의 회사명이 인쇄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11차 공판에서 외주를 준 것이라 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재판부의 양해를 얻은 후 “형사재판의 중요 증거물에 대한 분석을 외부 민간업체에 의뢰했다면 그게 사문서지 공문서인가?‘라고 검찰에게 물으며 ”수사도 용역을 주느냐? 이럴 거면 65명의 과학수사부를 해체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질타했다. 

    문제가 커지자 이 업무를 담당한 검사는 “외주를 준 것이 아니라 복원소프트웨어가 이 회사가 만든 것이어서 복원한 모든 문서에 이 회사 이름이 기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정정했다. 

    재판부는 검찰에게 8월12일 마지막 공판에서 복원을 담당했던 수사관을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명령했다. 

    현재 홍준표 변호인측은 대검 과학수사부에 윤 전 부사장의 휴대폰을 대검에서 복원했는지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상태이다. 대검의 ‘디지털포렌식 수사관의 증거 수집 및 분석 규정’에 따르면 수사 과정을 ‘디지털수사통합업무관리시스템’에 등록하도록 돼 있다. 

    7월15일 예정된 12차 공판에는 피고인측이 신청한 증인 2명에 대한 심문이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