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은 통치권 포기하란 뜻, 장관들 여의도로 출근해야 할지도
  •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발언을 두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찍어내기’ 논란이 일고 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대통령 탈당설을 흘리며 유승민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법 개정 재의 거부’와 ‘유승민 재신임’이란 카드로 당청 갈등을 봉합하려했지만 실패했다. 29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야당과 정의화 국회의장은 개정안이 돌아오면 재의에 붙이겠다며 국회 의사일정 중단으로 청와대에 맞서고 있다. 

  • 유승민 원내대표는 취임 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 도입’, ‘공무원연금 개정과 국민연금 개정 연계 처리’, ‘국회법 개정’으로 청와대와 충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정치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을 두고 언론들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언급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찍어내기’란 표현을 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국무회의 발언을 두고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전면전도 불사할 기세다. 

    국회법 통과 방조는 통치권을 포기하는 ‘배신의 정치’

    그렇다면 대통령이 강하게 반대한 국회법 개정안을 여당이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이유는 뭘까? 또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에 왜 거부권을 행사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통치권이 국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과 함께 개정안이 남용될 경우 행정부나 사법부가 이를 통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동안 행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입법 취지를 훼손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남용할 것이란 전제를 빼면 국회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19대 국회가 보여준 국회선진화법은 수준 이하였다. 국제적 망신을 당했던 18대 국회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하라고 했더니 19대 국회는 정쟁과 야합의 도구로 이를 악용한 측면이 많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회법 개정안마저 통과되면 박근혜 대통령과 행정부는 식물정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장관들은 세종시가 아닌 여의도로 출근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을 정당의 목표인 정권 창출 보다는 국회의원 개인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는 야합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배신의 정치’란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풀어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창출’이 아닌 국회의원 개인의 권력욕으로 채워진다면 정권창출을 위해 자신들을 지지해 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정당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면 정치는 실종되고 국가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를 묵인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사사건건 의사진행을 막고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어깃장을 놓으면 국무위원들은 국회의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민원들이 섞일 것이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잘못되면 모두 대통령 책임으로 돌리면 된다. 

    누가 대통령을 하려하겠는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이쯤 되면 한 번 하자는 거지요?’나 ‘대통령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가 나올 법한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감안하면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통령 탈당설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김무성 대표의 백의종군 선언’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면승부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이 가지는 부정적 의미를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대통령의 인내가 임계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탈당 후 정치 개혁으로 정면 돌파 ‘승부수’  

    박근혜 대통령은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다.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남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란 점은 자타가 공인한다. 따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내년 총선에서 여야 모두 국민의 심판을 받게 하는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을 통해 탈당 선언과 함께 정치개혁을 호소할 경우 명분이란 샅바 싸움에서 국회가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탈당의 명분이 정치개혁이라면 보수층의 결집을 끌어낼 수 있고 야당발(發) 정계 개편에도 동력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 불안한 민심은 원인제공자를 찾아 움직일 것이다. 대통령인지 국회인지를 두고 선택할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진정성이다. 야당은 이 싸움에서 늘 졌다. 미래권력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스러운 절묘한 타이밍에 던진 승부수다. 야당은 대통령과 싸우려하지만 대통령은 여당과 싸운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여야 모두 여론전쟁의 프레임 설정에서 대통령에게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