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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8·9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영남권 당원들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영남과 실날같은 인연이라도 찾으려 안간힘을 쓴 가운데, 이정현 의원은 되레 호남 출신임을 부각시키는 역발상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확정된 새누리당의 전당대회 선거인단 현황에 따르면 34만7506명의 전체 선거인단 중 영남권 선거인단은 15만7459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5%를 점유했다. 수도권이 12만860명(34%), 충청권이 3만4656명(9.9%), 호남권이 9501명(2.7%)으로 그 뒤를 따랐다.
합동연설회가 치러지는 4개 권역 중 첫 연설회가 열린 영남권에서 전체 표심의 절반 가까이가 좌우되는 상황이다. 가히 당권 경쟁의 승부의 키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감안한 듯 전당대회 후보자들은 영남권과 실날 같은 인연이라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당대표에 출마한 이주영(경남 마산합포)·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과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조원진(대구 달서병) 의원 등 영남 출신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 중 경북 출신인 강석호 의원은 "마산 진해에서 해병 351기로 눈물겨운 훈련소 생활을 했다"며 "참고로 우리 집사람은 진주 출신인데 이 또한 참고해주기 바란다"고 밝혀, 경북 뿐만 아니라 합동연설회가 열린 현지인 경남의 표심까지 사로잡으려 했다.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정병국 의원은 "저 멀리 경북 포항에서, 또 대구·울산·부산에서, 우리 처가가 있는 통영에서 오신 당원 여러분"을 외쳤고, 최고위원 출마자인 정용기 의원은 "충청도 출신이지만 아내는 경북 포항에서 나서 대구와 부산에서 컸다"며 '영남의 사위'임을 호소했다.
최고위원 후보자인 최연혜 의원은 "남편이 대구 경북고 52회 졸업생"이라며 "영남 지역 현안을 며느리의 심정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영남과 마땅한 인연을 찾지 못한 후보자들은, 이 지역 당원들과 '정신'을 추어올리기에 바빴다.
함진규 의원은 "새누리당 정권창출의 주역은 영남권 대의원 동지 여러분"이라며 "변함없이 당의 구심점이 돼달라"고 추어올렸고, 이장우 의원도 "영남이 대한민국의 정신적 뿌리라는데 맞는가"라며 "서애 유성룡 선생의 우국충정이야말로 새누리당의 든든한 뿌리이자 버팀목"이라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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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이정현 의원은 역발상으로 승부수를 던져 장내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선거인단 중 호남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적은 가운데, 오히려 호남 출신으로서 그동안 겪은 설움을 담담히 토로하는 모험적 전술을 펼친 것이다. 이 전술은 멋지게 들어맞으면서 장내의 큰 박수와 연호를 이끌어내, 이 자리에 모인 당 관계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7분 간의 연설에 앞서 1분간 상영되는 동영상에서부터 "새누리당에서는 호남 출신이어서, 호남에서는 새누리당 출신이어서 지난 세월이 서러웠다"고 한 이정현 의원은 "나도 한 번 경상도의 우리 당 국회의원들처럼 박수 한 번 받아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늘 내게 박수 한 번 보내주겠나, 연호 한 번 해주겠나"라고 외친 이정현 의원을 향해 창원실내체육관의 5000 객석을 가득 채운 당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함께 '이정현'을 연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현 의원은 "잘 알다시피 22년 동안 호남에서 새누리당으로 출마해 20년간 떨어지고, 최근 2년간 당선된 이정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온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지역주의의 벽을 넘었다"고 자신했다.
이어 "호남 출신이지만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33년 동안 이 새누리당에서 당을 지켜왔다"더니, 전국을 순회하는 '배낭 토크'를 하며 '트레이드 마크'가 된 잠바를 벗어던지며 "국민을 섬기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마을회관에서 자고 이장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바로 이 잠바떼기를 입고 온 국민과 함께 누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새누리당에는 어느 순간부터 국민이 사라졌다"며 "당대표가 되면 민생현장에 들어가 야당의 시각으로 민생을 살피고 여당의 책임감으로 법안에, 예산에,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섬김의 새누리당을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정현 의원이 7분간 연설하는 도중 좌중에서는 15번의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다.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되레 호남 출신임을 내세운 전술이 잘 들어맞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의원·책임당원들의 감성에만 호소한 것이 아니라, 당대표가 호남에서 나오면 1년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가도에서 정권재창출의 이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냈다는 평이다.
이정현 의원은 "내가 당선되면 호남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보수정당의 대표가 된다"며 "호남에서 20% 이상의 지지를 이끌어내서 반드시 정권재창출의 보증수표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외로웠던 나 이정현이 33년간 새누리당을 지켰으니, 이제 여러분이 이정현을 한 번 지켜달라"며 "여러분, 한 번 도와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