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늘고 R&D 줄고 '이중고'...노조 "업황 침체 나몰라라" 월급만 올려라
  • 선박가격이 수년간 바닥을 맴도는 상황에서 발주마저 급감하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가 대내외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인상만을 고집하는 노조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특히 영업이익이 매년 감소세에 접어드는 추세에도 조선사 직원들의 평균임금은 과거 호황기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만큼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날로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반면 중국은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수주경쟁에 참여, 국내 조선사들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 아직까지는 고부가가치 선박 및 해양설비 부문에서 기술우위를 보이고 있다지만 이 격차마저도 매년 좁혀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속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R&D(연구개발)투자가 필수적인데, 정작 이 분야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새해가 접어듬에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2014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해 12월 31일 노사가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며, 이날 오전부터 조합원 찬반투표에 들어간다. 그러나 사측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조가 20년 만에 파업을 강행하는 등 지난해 내내 강경한 태도를 보여 온데다, 앞서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조합원 투표에서도 합의안이 부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도 임금인상 문제를 놓고 노동자협의회와 해가 넘도록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회사 수익도, 선가도 줄줄이 내리는데…오르는건 인건비
    이 두 회사는 지난해 고사양 선박 및 해양플랜트 건조 과정에서 경험부족으로 인한 설계 변경 및 공정 지연 등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환경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특히나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적자만 3조2772억원에 달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지난 2010년만 하더라도 5조원이 넘던 영업이익이 매년 1조원 넘게 증발한 셈이다. 2011년 50만원을 상회하던 주가도 10만원대 초반(6일 종가기준 10만2500원)까지 내려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박가격이 하락한 상황에서 과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진행했던 저가수주의 여파도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 그러나 직원들의 평균임금은 호황기 수준을 웃돌고 있어, 실제 배 한 척을 건조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의 비중도 날로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며, 시황이 좋을 땐 매년 임금도 큰 폭으로 상승했었다"며 "문제는 2009년부터 선가가 바닥을 향해 내려가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직원들 연봉은 시황과 관계없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종마다 차이가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저가 선종 한척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인건비의 비중이 최근엔 과거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낮은 사양의 선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고, 친환경·스마트 선박과 해양플랜트 등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설비에 대해서는 인건비 비중이 높은 편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해양설비의 경우 가격대비 인건비 비중이 낮다지만 투입인력이 상선보다 평균 2~3배 많은데다, 건조가 지연될 경우 인건비 비중의 증가폭이 가팔라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며 "그나마 지난 2014년의 경우에는 그 발주마저도 급감한데다, 향후 전망 역시 불투명해 업계의 고민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해양설비 건조과정에서 수천억원의 직격탄을 맞은 바 있다. 또 2013년에는 다수의 해양플랜트 건조 계약을 기반으로 수주목표를 초과달성하기도 했으나, 지난해에는 유가하락 등의 영향으로 해양설비 발주가 크게 줄며 목표달성에도 크게 실패했다. 
    ◇R&D투자만이 살 길인데, 이마저도 뒷걸음질
    국내 조선업계가 임금문제로 속병을 앓는 도중 양은 물론 질적인 측면에서까지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발주되는 대다수의 중소선박 및 저가선박은 중국조선소들의 몫이 됐다. 아직까지 고부가가치 선박에 건조에 있어서는 기술우위를 확보하고 있다지만 이마저도 지속적인 R&D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년 안에 중국에 역전당할 수 있다는 지적들도 나온다.
    과거 전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조선 산업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앞선 기술력에 도취되어 혁신 기술개발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석유파동을 게기로 신형 선박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원가를 절감하고자 정형화된 설계 표준을 완성함과 동시에 설계인력을 대폭 줄인 바 있다. 결국 최신 트렌드에 발 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점차 도태되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한국에 내줬던 것이다.
    그런데 갖가지 내홍이 겹치며 국내 조선업체들의 R&D투자는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살펴보면 지난 2005년 1.2%에서 2013년 0.5%까지 매년 감소해왔다. 평균임금이 꾸준히 상승한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수년 간 매출액의 1.0%와 0.7%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 답 찾는 조선사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보다 더욱 값싼 노동력을 자랑하는 동남아시장에서 답을 찾는 국내 조선사들도 있다.
    먼저 한진중공업의 수빅조선소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부산 영도조선소의 도크가 협소해 대형선박을 건조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 대형 도크를 갖춘 조선소를 필리핀에 설립한 면도 있다. 그러나 수빅조선소의 가장 큰 매력은 월 평균 30만원, 1년에 400만원이 채 안 되는 값싼 현지 노동력이다. 연간 약 1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진 중국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물론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비교해 기술력 등 생산성면에서 크게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과 연구개발을 통해 이를 차차 메꿔가면서도 낮은 임금체계를 유지해가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방침이다.
    삼성중공업도 베트남에 중소형 선박 건조를 전문으로 하는 조선소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사양 선박에 대한 인건비 부담이 날로 가중되는 상황에서, 중국 조선사들과의 가격경쟁마저 과열되자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거제조선소의 경우 장기적으로 대형 선박 및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 설비의 집중 생산기지로 활용될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 동남아시아 지역 조선소 설립 추진설과 관련한 조회공시 요구에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