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험' 범천동 노후주택, 세입자만 긴급 이주소유주 동의 없어 정비 지연, 최근 철거 의사 밝혀"강제철거 기준·재산권 보호책 함께 마련해야"
  • ▲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의 3층 노후주택. 붕괴 우려로 세입자는 긴급 이주했지만, 비탈 아래 주택에는 여전히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변진성 기자
    ▲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의 3층 노후주택. 붕괴 우려로 세입자는 긴급 이주했지만, 비탈 아래 주택에는 여전히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변진성 기자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 산복도로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3층 주택이 방치돼 있다. 최근 소유주가 뒤늦게 철거 의사를 밝혔지만 아래쪽 주민들은 건물이 철거될 때까지 붕괴 위험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하는 처지다.

    1일 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현장에서 확인한 주택의 상태는 심각했다. 외벽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녹슨 철근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외벽에는 녹물이 고드름처럼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건물 곳곳의 벽면에도 크고 작은 균열이 나 붕괴가 진행 중이었다.

    3층 옥상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빗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고인 물 주변에서는 모기가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옥상의 물웅덩이와 노출된 철근, 벽면 곳곳의 균열은 건물 아래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사람이 계속 살기에는 위험하다는 판단에 따라 집 안에 있던 아래층에 살던 노부부는 긴급 이주했다. 그러나 주택 바로 아래 건물에는 여전히 다른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폭우나 태풍으로 건물이 무너지면 아래쪽 주택을 덮칠 우려가 있는 구조다.

    인근 주민은 "모두 잠든 밤에 폭우가 쏟아져 집이 무너지면 대피하거나 신고할 시간조차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며 "집주인의 재산도 중요하지만 그 아래에 사는 주민들의 생명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재개발 초입인데 '입주권' 우려로 철거 지연

    해당 주택은 범천2동 절골·미실 새뜰마을사업장 안에 있다. 이 일대에서는 재개발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정비구역 지정 등 구체적으로 진행된 절차는 아직 없다. 재개발이 실제로 성사될지도 불확실한 초기 단계다.

    그럼에도 소유주는 건물을 먼저 철거하면 향후 분양 대상자 인정이나 감정평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해 철거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성사될지 모르는 재개발에 대한 기대 때문에 세입자는 집을 떠나고 주변 주민들은 붕괴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셈이다.

    건물을 철거한다고 반드시 입주권을 잃는 것은 아니다. 정비사업 추진 단계와 토지 면적, 건축물의 적법성, 소유권 취득 시기 등에 따라 분양 대상자 자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비구역 지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철거가 향후 권리 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해 소유주가 철거를 꺼리는 일이 발생한다.

    새뜰마을사업은 소유주의 동의를 받아야 정비가 가능하다. 부산진구 역시 동의를 받지 못해 해당 주택의 철거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이 일대에 재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소유주가 철거에 동의하지 않아 새뜰마을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다만 최근 해당 주택 소유주가 동의 의사를 밝혔고 조만간 동의서를 제출하기로 해 신속히 정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택은 뒤늦게 철거 가능성이 열렸지만 재개발 기대 지역의 다른 위험 주택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유주가 동의할 때까지 정비가 지연되는 동안 그 위험은 주변 주민들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 ▲ 노후주택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녹슨 철근이 드러나 있다. 철근 주변으로 흘러내린 녹물과 침출물이 고드름처럼 굳어 있다.ⓒ변진성 기자
    ▲ 노후주택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녹슨 철근이 드러나 있다. 철근 주변으로 흘러내린 녹물과 침출물이 고드름처럼 굳어 있다.ⓒ변진성 기자
    폭우에 현실이 된 노후주택 붕괴

    지난 8월 28일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는 100㎜가 넘는 장대비가 내린 뒤 빈집 2채가 무너졌다. 건물 잔해는 3m 높이 옹벽 아래 주민 공원까지 쏟아졌고, 인접한 2층짜리 빈집도 크게 기울었다. 당시 담당 관청은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주민 3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당시 부산에는 시간당 최대 5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현장 주민은 건물이 무너질 때 난 굉음을 번개가 떨어진 소리로 착각했다고 전했다.

    범천2동에서도 노후주택이 무너지며 이웃집까지 피해를 본 사례가 있었다. 김훈섭 범천2동 37통장은 "산복도로 주택은 한 채가 무너지면 아래쪽 집까지 연쇄적으로 위험해진다. 주민들은 큰비가 내릴 때마다 위쪽 집부터 살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노후 빈집도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4년 전국의 미거주 주택은 159만9086호로 2015년보다 49.6% 증가했다. 특히 1989년 이전에 지어진 단독주택 가운데 약 30만1000호가 비어 있어 같은 시기에 건축된 전체 단독주택의 16.8%를 차지했다.

    강제철거 기준과 재산권 보호 함께 마련해야

    현행법에는 붕괴나 화재 등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주택에 대해 안전조치나 철거를 명령하고 필요한 경우 강제조치에 나설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개인 재산권과 보상, 행정절차가 얽혀 실제 현장에서 신속한 철거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강제철거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개인 재산권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쉽게 이뤄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정비 전문가들은 정밀안전진단 E등급이나 빈집 실태조사 4등급 등 객관적인 기준을 토대로 붕괴 위험 주택을 판정하고 이를 신속한 안전조치와 철거 명령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준을 충족한 주택에 철거 명령을 내리고 소유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철거 절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강제철거 기준과 함께 재개발 기대 지역 소유주를 위한 재산권 보호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익 목적으로 위험 주택을 철거한 경우 향후 정비사업에서 기존 건축물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거나 철거 당시 건축물의 가치를 감정평가에 반영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철거 후 나대지로 바뀌면서 늘어날 수 있는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검토 대상으로 꼽힌다.

    박영숙 범천2동 절골·미실 새뜰마을사업 총괄코디네이터는 "붕괴 위험 주택은 직권철거가 가능하도록 정량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공익을 위해 철거에 동의한 소유주가 입주권과 감정평가, 세금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보완책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 ▲ 노후주택 벽체가 크게 갈라지고 일부가 벌어져 떨어져 나가면서 붕괴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변진성 기자
    ▲ 노후주택 벽체가 크게 갈라지고 일부가 벌어져 떨어져 나가면서 붕괴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변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