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의 한결같은 만류에도 청와대 "800만 달러 지원에 변경은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과 정상간 통화를 하고 있다. 이날 정상간 통화에서 아베 총리는 이 시점에서의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을 적절치 않다고 재고를 호소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지원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과 정상간 통화를 하고 있다. 이날 정상간 통화에서 아베 총리는 이 시점에서의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을 적절치 않다고 재고를 호소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지원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제공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을 강행한다는 소식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정상간 통화를 통해 적극 만류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외의 우려에 굴하지 않고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우리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설득했던 아베 총리는 '하지만 나는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 어리둥절할 것으로 보인다. 800만 달러 대북 지원에 국내외의 우려가 점증하고 찬성 입장은 찾아보기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지원을 하고야 말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15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간 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지원을 한다더라"며 "지원 시기를 고려해달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라 유엔안보리에서 더욱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하기로 만장일치 의결이 이뤄졌고, 직후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이 또다시 자행됐는데도 '800만 달러 상당의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뜻을 완곡하게 전달한 것이다.

    일본 내각은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대북 지원 의사에 관해 전날에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상을 통해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해 각별한 제재 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훼손하는 행동은 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했는지 "한국 정부가 아직 정식으로 (대북 지원을) 발표한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에 의견을 전달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피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데 통일부는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관계없이 오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을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설마 정말 이 국면에서 북한에 돈을 주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정부의 공식 발표가 없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던 일본 내각으로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

    통상적으로 덕담만 오고가는 정상간 통화에서 아베 총리가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800만 달러 대북 지원'에 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있어서는 일본도 당사국이며 피해국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두 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은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지나갔다. 명백히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북한 돈줄 옥죄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은 물론 '고교 무상교육 시행'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등 북한으로 돈이 흘러들어갈만한 구멍을 철저히 틀어막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0년부터 고등학교 수업료를 무상화하기로 결정했으나, 일본 내각은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에 대해서만큼은 "조선학교는 조총련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계가 의심된다"며 "학교 측에 지급되는 지원금이 수업료로 충당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무상교육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조총련 조선학교에 지급되는 지원금이 '엔화 외환'의 형태로 북한으로 송금될 가능성을 대놓고 의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자국 내에서의 논란과 소송에도 굴하지 않고 대북 제재에 총력을 다해온 일본 내각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자신들보다도 더 큰 피해 당사자라고 여겨온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것에 의아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른 아베 총리의 완곡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을 기필코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이 문제는 유엔식량계획(WFP) 등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와 검토하게 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다뤄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일축했다.

    얼마 전까지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북한에 원유를 수출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정상간 통화에서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을 고집하는 것을 아베 총리가 납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아베 총리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 전날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한러정상회담에서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아베 총리에게 '원유 공급 중단'을 대신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오후에 일러정상회담이 있는데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겠다"고 흔쾌히 요청에 응했으며, 직후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실제로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불과 며칠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탁에 응해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대북 지원 중단'을 대신 설득하러 나섰었던 아베 총리는, 돌연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 문제가 단순히 핵·미사일로 도발하는 북한에 지금 시점에 지원을 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국내쟁점의 문제를 떠나, 대북 제재 공조를 파괴하고 우방국 정상과의 신뢰와 우의를 훼손하며 '코리아패싱'을 부추기는 국제쟁점이 돼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800만 달러 대북 지원에 관해서는 반대 의견이 일색이다.

    자유한국당 정용기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 상황에서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은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다"며 "정말 제정신을 가진 정권인가"라고 의아해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오락가락하면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해 유엔안보리에서 제재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또다시 미사일을 쏘아대는 지금이 (800만 달러 대북 지원의) 적기인지 판단해보라"고 질타했다.

    바른정당 김세연 정책위부의장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전세계가 북한의 자금을 차단하겠다고 하는 이 때에 북한에 때 아닌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우리의 운명이 걸린 안보 문제에서 우리가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전세계가 동참하는 대북제제에 우리만 이탈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요지부동 800만 달러 상당을 반드시 북한에 지원하고야 말겠다는 입장이라 국내외의 논란은 점차 커져만 갈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미사일·핵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는 별개로 800만 달러 지원에는 변경은 없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은 변하지 않는 기조"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