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 역설한 文대통령도 '공백' 절절히 체감했을까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열린 경제인간담회 스탠딩 칵테일 타임에 앞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열린 경제인간담회 스탠딩 칵테일 타임에 앞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이틀에 걸쳐 진행된 청와대 경제인간담회가 막을 내렸지만, '사업보국'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커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경제인 초청 2일차 만찬간담회를 진행했다. 자산규모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을 대표해서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했다.

    만찬에 앞서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진행된 스탠딩 칵테일 타임 때, 문재인 대통령은 권오현 부회장과 간단한 환담을 나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신동빈 롯데그룹 회장·황창규 KT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에 이어 권오현 부회장에게로 시선을 돌린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며 "항상 삼성이 경제성장을 이끌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권오현 부회장이 "열심히 계속 잘 되도록 하겠다"고 답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삼성이 우리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비중에 비춰볼 때, 대화가 지나치게 소략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화의 순서도 그랬거니와, 이후 인왕실로 옮겨 계속된 만찬에서도 권오현 부회장의 자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거리가 먼 좌석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호암 이병철 선생이 사업보국(事業報國:사업을 통해 나라를 지킴)의 정신으로 삼성을 일으켜세운 이래, 그룹의 정통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게 다시 생각해도 거듭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삼성가의 핏줄에는 사업보국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간 선대 회장들도 정치권력과 뜻하지 않게 악연으로 얽혀 억울한 고초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삼성가의 당주들은 그 때마다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경영에 전념해 국민경제를 일으켜세우는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호암은 박정희정부 때 사카린 관련 사건으로 억울한 고초를 겪었지만, 의연하게 한국비료와 대구대를 국가에 헌납하고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경제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건희 회장은 2000년대 중반 이런저런 사건의 폭로에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한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뜻까지 내비쳐야 했다. 은퇴를 선언한 그를 다시 부른 것은 나라와 국민이었다. 특별사면을 받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한몸을 던진 이건희 회장은 마침내 삼수 끝 유치 성공이라는 쾌거를 가져왔다.

    내년 초로 다가와 이날 경제인간담회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주의를 환기했던 평창동계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회장이 오롯이 이 나라에 유치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암은 항상 "좌절을 겪어야 큰 그릇이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지금 이재용 부회장이 뜻하지 않게 억울한 고초를 겪고 있는데, 이러한 좌절은 선대 회장들도 한 번씩 경험해본 바다. 삼성가에 이어져 내려오는 사업보국의 핏줄을 고려할 때, 이재용 부회장이 지금의 고초를 자양분으로 승화시켜 국민경제에 더 큰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역할'을 하리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삼성가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사업보국의 정신을 국민경제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인들에게 "새 정부는 사람중심 경제를 목표로 일자리 중심의 소득주도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방향으로 삼고 있다"며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경제를 살릴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은 삼성가의 DNA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일갈했던 이건희 회장의 그 유명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그리고 2010년에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도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천명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 핏줄을 물려받은 이재용 부회장이 자유로운 신분으로 이날의 경제인간담회에 당당히 참석할 수 있었더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여민관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설치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보다 유의미한 결론이 틀림없이 나왔을 것이다.

    2일차 경제인간담회는 자산규모 1위인 삼성이 참여했는데도 전날의 1일차 간담회보다 30분이나 짧은 시간만에 마무리됐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권오현 부회장은 만찬간담회 도중 긴 말은 하지 않았으나 "반도체는 당연히 잘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반도체도 문제에 크게 봉착해 있다"고 뼈있는 말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 국가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민경제의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자산규모 1위 그룹의 '공백'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 것인가. 이날의 경제인간담회가 그 '공백'을 참석자들에게 절감케 해서 리스크가 조속히 제거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