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대 당시 독일 병원 풍경, 파독 간호사 할머니들의 기록 등 볼 수 있어
  •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기획전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기획전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김포공항을 떠나오던 날, 눈물 젖은 어머니의 얼굴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으나 식구들과 아름다운 산천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 파독 간호사 김양순 할머니 

    한국 여성들의 독일 이주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1966년부터 해외개발공사의 모집에 의한 집단 이주로 독일에 정착한 이들은 독일 사회 내 한국 교민 1세대를 형성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26일부터 올해 9월3일까지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파독 간호여성들의 삶을 기획 전시한다.

    전시는 경제개발정책과 애국심에 주목해온 그 간의 전시와 달리, 독일 서베를린에서 활동한 한인 간호 여성들의 정치·문화적 삶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기자가 박물관을 찾은 28일 오전, 전시회장에는 어둡지 않은 은은한 조명이 1960년대 독일 병원의 모습을 담은 전시물을 비추고 있었다.

    작은 전시장 안에는 여성들이 독일행을 선택한 배경과 간호여성들의 병원생활, 현지에 남아 정착한 1세대 한인들과 돌아온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물로 가득했다.

    파독 할머니들의 사진 앞에는 서너 사람의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간호사 사진 옆에서 그들의 독일 생활상을 읽던 관람객 이 모씨(남·34)는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고충이 느껴진다"며, "독일로 가서라도 일을 하고자 했던 여성들의 의지에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 전시물을 보는 관람객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전시물을 보는 관람객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한 전시물 앞에는 유독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전시물은 여성들이 독일행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장문의 글이었다.

    '여성들에게 파독은 서구 선진 국가에서의 경험과 색다른 문화에 대한 동경이었고, 젊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독일행을 결정한 것이 기본적 이유이긴 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는 말이다. 파독은 선진국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싶은 열망을 가진 여성들에게 '투자'의 기회이기도 했다는 해석이다.

    해당 글은 '고난의 시기에 희망을 갖는다'는 이번 전시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주관한 서울역사박물관도 관람객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송인호 서울역사박물관장은 "그 동안 파독 간호사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발 정책의 하나로 조명됐고 그들의 애국심에 주목했다"며, "여성들이 어떤 배경이나 생각을 가지고 독일 이주를 선택했는지, 독일 사회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여성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람을 마치고 '고난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되새기며 전시장을 나오던 중, 문구 하나가 오래도록 발걸음을 붙잡았다.
김포 공항에서 태극기 흔들면서 '엄마 내 돈 벌어서 꼭 빚 갚아드릴게요' 하면서 독일행 비행기를 타던 그 때 그 시절, 반 평생이 넘도록 떠나와 버린 그 동네 그 시절, 이젠 시래기죽도, 엄마도 없는 그 텅 빈 동네를 아직도 그리워하며 눈물짓누나. 나의 살던 고향이기에.

- 파독 간호사 김정남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