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평가 사실상 폐지, 최대 피해자는 ‘기초학력 미달학생’
  • ▲ 21일 서울 광진구 소재 한 중학교에서 열린 201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학생들이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점검해 교육정책 수립 및 교육과정 개선, 학생 개인 및 단위학교의 학업 성취수준 파악 등 행·재정적 지원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됐다. ⓒ뉴시스
    ▲ 21일 서울 광진구 소재 한 중학교에서 열린 201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학생들이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점검해 교육정책 수립 및 교육과정 개선, 학생 개인 및 단위학교의 학업 성취수준 파악 등 행·재정적 지원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됐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가 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의 사실상 폐지를 선언했다.

    국정자문위가, 현행 전수평가 방식인 이 제도를 표집평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학업성취도 평가는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계에서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폐지로 인해 학생들 학력의 하향 평준화는 물론, 사교육이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새 정부가 학업성취도평가 시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기존 정책을 뒤집으면서, 정부의 성급한 정책시행이 교육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는 14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올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표집평가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학업성취도평가는 정부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시행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올해는 중3·고2 학생 가운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선정하는 표집학교에서만 실시한다. 이에 따라 올해 시험을 치르는 인원은 전국의 중3·고2 학생 93만5,059명의 약 3%인 2만8,646명으로 대폭 줄었다.

    앞서 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들의 과목별 성취 수준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86년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전교조와 속칭 진보 성향 교육계에서는 이 제도가 학교와 학생을 줄 세우고, 지나친 경쟁으로 내몬다며 시행 초기부터 폐지를 주장해왔다.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전교조와 좌편향 언론, 야당은 이 제도의 정식 이름대신, 부정적 의미를 담은 ‘일제고사’라는 별칭을 공식화하면서, 척결해야 할 적폐의 하나로 꼽아 왔다.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등 진보 교육계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일제고사 폐지’를 사실상 결정하면서, 교육계는 그 부작용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개인별 학력에 대한 진단과 평가, 그리고 피드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일부 학생들만 참가하는 표집평가로는 정확한 성취 수준 분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총은 “제도 폐지는 자신의 과목별 성취 수준을 파악하고자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바람을 저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공교육 정상화’라는 대명제에도 맞지 않는 발상”이라며, 정부의 성급한 결정을 비판했다.

    “이번 정책은 개인별 평가를 원하는 학생 및 학부모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1:1 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공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학교 현장의 충분한 의견을 들어 진행해야할 사항.”

    서울의 한 중학교 A교장은, “정책 변경의 최대 피해자는 국·영·수 주요과목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이 될 것”이라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개인 편차가 굉장히 다양한데, 표집검사로 과연 학생들의 기초학력 평균치를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도 폐지로 피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이 될 것."

    A교장은 학업성취도 평가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평가 결과 분석을 통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전수 평가가 폐지된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학력 수준을 평가받을 곳이 사라지기 때문에, 과목별 성취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교조나 일부 편향된 세력의 정치적 구호로 인해, 성취도 평가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목표와 순기능이 도외시됐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서울지역의 다른 중학교 B교장은 "올해 학업성취평가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정부가 나서서 손바닥 뒤집듯 시험을 취소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교육은 신뢰가 바탕인데, 정부가 일부의 주장을 수렴해 갑자기 시험을 폐지시킬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소재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새 정부의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정책에 대해 "인기위주의 교육정책이고, 교육의 사회주의화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새 정부 교육정책이) 경쟁을 아예 없애겠다는 취지로 가고 있는데, 오히려 학생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교육수준이 하향평준화 되는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정치를 위해 교육을 이용한 사례로 보인다. 경쟁의 순기능을 무시하고 경쟁 자체를 도마 위로 올려놓을 수는 없다. 성과 위주의 비교육적인 경쟁이 잘못된 것이지, 학생들 간의 선의의 경쟁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는 “자원도 없고 인구도 없는 한국이 인도와 중국 같은 경쟁국을 제치고, 선진국 대열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교육의 힘 때문이었다“며, ”그러나 앞으로 대한민국 학생들은 세계의 경쟁에서 소외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조 대표는 “현재는 산업화의 열매를 따먹고 있지만, 앞으로는 먹거리 창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정책은 우리 학생들을 세계적 인재로 키우기 위한 범국가적 인식의 부재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