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뇌물 혐의도 전면 부정, “신 회장 먼저 만난 안종범은 왜 뇌물죄 기소 안 했나”
  • 23일 뇌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참석했다. ⓒ 사진 공동취재단
    ▲ 23일 뇌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참석했다. ⓒ 사진 공동취재단


    뇌물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사건 심리를 맡은 김세윤 부장판사(형사합의 22부)의 공판 개시 선언과 피고인들의 모두진술로 시작된 이 사건은, 공판 첫날부터 박 전 대통령의 변론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앞으로 예정된 공판과정의 험난함을 예고했다.

    이날 공판의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의 변론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영하 변호사의 모두 변론이었다.

    그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18가지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면서, 시종일관 공세적 태도를 취했다.

    특히 그는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검찰이 언론의 기사를 증거로 삼아 기소를 했는지 되묻고 싶다”면서, 공소사실이 예단과 추론, 증명력이 의심되는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유 변호사는 공판검사를 직접 겨냥해, (언론 기사를 유죄의 유력한 증거로 판단한)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최근 문제가 된 ‘돈 봉투 만찬’에 참석한 검사들도 ‘부정처사 후 수뢰죄’로 기소가 가능하다는 것이 본인의 의견”이라고 꼬집었다.

    유 변호사는, 공소사실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의 독대 및 대가관계 합의(제3자 뇌물 및 뇌물공여)와 관련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공소사실이 안고 있는 모순을 밝혀내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 박 전 대통령의 변론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 ⓒ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 전 대통령의 변론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 ⓒ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우선 유 변호사는 박영수 특검과 검찰 특수본이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하기 위해 구성한 ‘박근혜-최순실 경제공동체 논리’의 허점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제3자가 받은 금전을 뇌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제공동체 개념이 성립해야 한다. 특검은 이를 위해 최순실이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을 사줬고 옷값을 대납했으며, 사저의 관리 및 청와대 관저 인테리어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은 장충동 집을 매매한 자금으로 구입했으며, 옷값은 전액 우리가 지불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이 경제공동체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호관계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한 점을 지적하면서, “공모관계가 인정된다면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모의를 해서 삼성으로 하여금 어떻게 자금을 받아내겠다는 모의가 있었는지 범행과정에 대한 기재가 필요하지만, 공소장엔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공여와 횡령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특검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직 임원진 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하고, 그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는 최순실 측에 430억원대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뇌물 제공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뤄졌으며,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가 독일 코어스포츠(최순실이 독일에 설립한 법인)와 컨설팅계약을 맺고 법인 계좌로 송금한 약79억원, 삼성전자가 동계영재센터에 후원한 16억2,800만원, 삼성이 미르 및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출연한 204억원 등을 모두 뇌물로 판단했다.

    유 변호사의 변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삼성 관련 뇌물 혐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 논리’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검찰의 공소제기가 구체적 근거 없는 예단 혹은 추론에 근거했음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전략은 유 변호사의 다음 변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유 변호사는,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후원을 뇌물로 본 검찰 판단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과의 독대를 통해, 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안종범 수첩’ 기록을 제시하고 있다.

    수사기록을 보면 검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안종범 수첩의 7월25일 독대 부분을 보면 ‘빙상협회 메달리스트 지원’이란 문구만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안종범의 관련 진술이 전혀 없다.”

    ‘빙상협회 메달리스트 지원’이란 안종범 수첩의 기록은,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을 지시했다는 검찰 공소사실과는 거리감이 있다.

    유 변호사는 대통령이 독대를 통해 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했다면, 이 부회장이나 삼성 측이 그 즉시 움직여야 했으나, 1차 후원금 집행이, 독대가 있은 지 두 달이 훨씬 지난 같은 해 10월2일 이뤄진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 뒤 건네줬다는 서류 봉투의 전달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특검이 밝힌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사실을 보면 오후에 대통령과 면담이 있었다. 당일 이 부회장이 삼성 사옥을 출발한 건 오후 9시38분, 다시 돌아온 건 11시가 넘는다.

    대통령 면담은 10시부터 10시40분 사이 이뤄진 걸로 나온다. 그런데 문서를 전달받았다는 담당자의 진술을 보면 11시경 청와대에서 퀵서비스로 문서를 보낸 걸로 돼 있다.

    상황이 맞지 않자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에선 이 부분 범죄사실을 빼고 달리 기재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짚어나가겠다.“

    유 변호사는, 미르 및 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들의 기금 출연을 뇌물로 본 특검 및 검찰 판단에 대해서는 “재단에는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이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자기가 쓰지도 못하는 돈을 왜 받아서 재단을 만들었겠느냐”며, “검찰의 주장대로 K재단은 최순실의 더블루K 용역을 위해 만들었다고 양보해도, 조그만 회사를 세워서 어느 세월에 그 많은 돈을 빼가겠는가, (범행)동기가 없다.”고 했다.

    그는 반OO 정와대 행정관의 참고인 진술을 인용하면서, 10대 그룹으로부터 각각 30억원씩 출연을 받아 문화 및 스포츠 육성 재단을 만들자는 계획은 2015년 2월,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이미 수립돼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특검 공소장을 보면 15년 5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재단 설립을 공모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보다 앞선 반OO 행정관의 같은 해 2월 재단 설립계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유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재단 설립 작업이 시작됐다는 기본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관련 뇌물 혐의도 전면 부인했다.

    “공소장에는 대통령이 신동빈 회장을 접견하면서 면세점 진출과 형제간 분쟁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는 청탁을 받았고, 박 전 대통령은 그 대가로 경기 하남 스포츠센터 건립자금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면세점을 늘리는 것이 과연 적당한지 재차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의 주장대로 안종범 전 수석이 신동빈 회장을 만나서 롯데의 신규 면세점 특허 추진을 부탁받았고, 안 전 수석이 이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신 회장과의 접견이 이뤄진 것이라면, 검찰은 왜 안 전 수석을 뇌물죄로 기소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며, “이를 설명해 달라고 했는데 아직 검찰은 답이 없다”고 했다.

  • 법정에 들어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으로 향하는 모습. ⓒ 사진 공동취재단
    ▲ 법정에 들어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으로 향하는 모습. ⓒ 사진 공동취재단


    이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다소 야윈 모습이었으며, 구치소 매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집게핀을 여러 개 사용해, 이른바 올림머리를 최대한 재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감색 외투를 있었으며, 공동 피고인인 최순실씨는 베이지색 상의에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회장은 감색 정장을 입고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들어설 때부터 공판이 끝날 때까지 거의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정면만을 응시했다.

    다소 처연하면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최순실씨는 모두진술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심한 감정의 기복을 보였다.

    이날 법정에는 박 전 대통령 변호인으로 이상철, 유영하, 채명성, 고태우, 김상율, 이동찬 변호사가 출석했으며, 최순실 변호인으로는 이경재, 최광휴, 오태희, 권영광 변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동빈 회장 측 변론은 백창훈 변호사 등 4명이 맡았다.

    이 사건 재판은 29일 3차 공판부터 병합심리로 진행된다. 25일 열리는 2차 공판에는 박 전 대통령만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