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조선 출연을 멈추게 된 사연

      내 나이에 TV에 출연한다는 건 처음부터 좀 샤이(shy)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사코 사양했지만 권유가 거듭되다 보니 어느 결에 한 번 쯤 해보자는 투로 출연했다.
    TV 조선 시사 프로였다.
    그런데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고 하다 보니 고정출연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나의 방송 중 발언과 관련해
    “방송법 제 100조 제1항에 따라 (방송사 등이) 관련규정을 준수하라”는 ‘의견제시’와 ‘권고’가
    2차례 왔고, 나의 또 다른 발언에 대한 방송사 자체의 옴부즈맨 지적사항에 대해서도
    방심위 측의 입장표명이 있었다고 한다.
    류근일이 심의규정을 위반한 것 같으나 “공인 및 공당의 정치적 활동 등 공적 영역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용인되는 점 등을 감안하여 방송사가 적절히 조치하라"는 것이었다.
    조치의 내용은 아래 각주(脚註)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각주(脚註) 1 방송법 제100조 (제재조치 등)

    ① 다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규정 등의 위반정도가 경미하여 제재조치를 명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해당 사업자·해당 방송프로그램 또는 해당 방송광고의 책임자나 관계자에 대하여 권고를 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개정]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제재조치가 해당방송프로그램의 출연자로 인하여 이루어진 경우
    해당방송사업자는 방송출연자에 대하여 경고, 출연제한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신설 2006.10.27.]

  •   문제된 발언의 내용인즉 이랬다.
    류근일이 야당의 내분을 ‘막가는 싸움’ ‘막말’ ‘궤변’ ’몰염치‘라는 표현 등으로
    “근거 없이 단정 지어 조롱하고 희화화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민원‘이 방심위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또 특정 정파를 1980년대 이래의 386 NL 운동권 출신이라고 한 것도
    근거 없는 단정이라는 ’민원‘도 들어왔다고 했다.

      세 번째 사항은 김정은 정권의 공안 책임자 김원홍에 관해 말하는 도중
    류근일이 그를 ’회자수’ ”김정은은 어느 놈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라고 말해,
    방송용어에 쓸 수 없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방송사 자체의 옴부즈맨 지적사항).
    출연자가 이미 뱉어버린 말에 대해 아무리 옴부즈맨 제도를 쓴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지적이라 한다. 이 세 번째 사항의 명목만은 충분히 알 만하다.

       이래서 그랬는지 방심위의 그런 ‘의견제시’와 ‘권고’는 일전(一轉) 하더니
    돌연 나의 출연 하차로 귀결됐다.(결말이 어느 곳에서 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TV 출연에 연연해 할 이유가 전혀, 정말로 전혀 없는 나로서는
    이 결말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진 않는다.
    다만 몇 가지 궁금한 점은 있다.

     언론인이 정당 내부의 험한 싸움과 욕설 급(級) 험구를
    ‘막가는 싸움 ’막말‘ ’궤변‘이라고 하는 게 정말 근거 없는 조롱이요, 따라서 죄인가?
    그렇다면 예를 들어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싸움에서 어느 한 쪽 편만 집요하게 들거나 물고 늘어진 일부 방송인들과 출연자들의 단정적인 비난과 단죄와 편파성은 심의대상이 아닌가?

      어떤 패널이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아이히만 같다”고 한 사례가 어찌 어찌 됐다는 말이 전해지긴 한다. 그러나 질적(質的) 양적(量的)으로 진영과 진영 사의에 제재의 형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야당 특정 계파의 주류 급 인사들이 왕년의 386 운동권 출신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연 근거 없는 소리일까?

       나의 이런 궁금증에 대해 누가 이런 해설을 해주었다.

    “신문 아닌 방송의 경우엔 방송심의규정이라는 촘촘한 그물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규정의 운영이 정치 바람을 탔나, 타지 않았나 하는 것은 또 다른 궁금증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 쪽은 거의 종일 방송 모니터링을 해
    자신들에 대한 출연자들의 못마땅한 발언을 방심위에 부지런히 ‘민원’으로 들이미는데,
    다른 한 쪽은 전혀 그러질 않는다”는 것이다.
    한 쪽은 집요하게 달라붙어 싸우는데 다른 한 쪽은 도무지 싸우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디어 운동장이 어디로 기울었겠는가? 이건 정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글의 특별한 의도는 없다.
    3월 24일 종편 재승인 심사가 힘겨웠지만 그런대로 무사히 끝났다 하기에
    그 동안 나의 방송 외도(外道) 중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적었을 뿐이다.
    신문쟁이는 역시 글이나 쓰고 살아야지 방송은 체질에 맞지 않는 듯하다.
    재승인 심사가 걸린 시점에서 해당 방송국만 본의 아니게 난처하고 불리하게 만들어준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각주(脚註) 2
      “방통위는 이 날(3/24) 재승인을 의결하면서 ‘오보, 막말, 편파방송으로 인한
    방송심의 규정 위반 법정제재를 매년 4건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조건을 종편 3사에 부과했다. (조선일보 2017/3/25일자 기사).

        끝으로, 지난 TV 조선 출연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대화를 꼽으라 한다면?
    마지막 출연 날 엄성섭 앵커가 이렇게 물어왔다.
    “요새 촛불과 태극기로 국론이 양분돼 있는 현실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TV가 촛불은 밤 11시까지 생중계를 했으면서 반대쪽 다른 여론이 일어나니까
    왜 갑자기 ‘자제해야 한다’고 하는지, 이게 공정한가요?”

    TV 조선의 발전을 기원한다. 시청자 분들께도 인사를 드린다.

    류근일 2017/3/24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