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에 다 '자강론 對 연대론' 논쟁

     우리 정계 양쪽과 시민사회 양쪽에선 지금 똑같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신기하다 할 정도로 똑같은 논쟁을. 특별하거나 졸속적인 단정 없이
    우선 객관적으로 이 현상을 바라만 보자면 이렇다.

     3월 23일 오후 필자는 자유민주 우파 지식인들의 모임인
    ‘한국자유회의’ 제2차 회의를 참관했다.
    거기서 만난 한 정치외교학자이자 전직 청와대 고위 관료였던 대학 후배 한 분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우파로서 대선 전략을 이렇게 피력했다. 공개발언 아닌 귀엣말이었다.
    “최고의 우선순위를 문재인 반대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파 후보가 누가 됐든 안철수 진영과 무슨 계약을 해서든 연대를 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선 이 길밖엔 없습니다.”

     그러자 회의가 시작되고 주최 측의 ‘탄핵사태에 대한 사상적 진단‘이란
    고품격 발표문이 낭독되고 그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여기서 20대 대졸 여성 등 대부분의 발언자들, 특히 예비역 고급 장교들은 이렇게들 말했다.

    “문재인에 반대하기 위해 김무성, 안철수 등과 연대 운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안 될 소리다. 보수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당당히 싸울 생각을 미리포기한 채
    그런 부류와 섣불리 타협했다간 또 계속 밀리기만 할 것이다.
    보수의 진로와 결집부터 확고히 해야 한다”

     회의가 끝난 후 참석자와 간사단 일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집에 왔더니
    이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국민의 당 국회위원 김동철 유성엽 황주홍’ 명의로 된
    ‘안철수 연대 불가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문건이었다.

    거기서 세 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 당 전 대표는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정치공학적 연대는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 세 의원은 이에 단호히 반대 한다” “안철수 전 대표의 연대불가론은
    문재인 대세론만 뒷받침할 것이다.” “친문 패권세력의 집권은 또 다른 패권정권의 탄생이고,
    결국 또 한 번의 국정실패로 나타날 것이다”

     이래서 범여권과 범야권 안에선 지금 똑같은 내부논쟁을 겪고 있는 셈이다.

  •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예비후보는 바른정당과 연대할 것을 주장하는 데(그리고 이른바 제3지대와도?), 김진태 예비후보는 ‘버린정당’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당 안에서도 안철수 박지원 의원 등은 연대에 비판적, 또는 유보적이고, 김동철 유성엽 황주홍 세 의원 같은 이들은 반문(反文) 연대론을 펴고 있다. 양쪽 시민사회 안에서도, 심지어는 친노파인 문재인 캠프와 안희정 캠프 사이에서도 이런 논쟁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런 논쟁이 양쪽에서 더 진행된 다음에 막판에 이르러
    어느 쪽이 우세한지가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논쟁이 아직 심화되지도 충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논쟁도 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
    다만 막연한 예감 같은 건 있다.
    연대론이 충분히 일리 있다 쳐도 그게 잘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 말이다.

     왜? 대통령제 하의 한국 대통령 선거에선 막판에 이를수록 둘 중 하나로 표가 쏠리는 경향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A가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B가 될까봐 할 수 없이 A를 찍어줄 수밖에...”하는 생각들을 유권자들이 해온 까닭이다. 그리고 ‘중간’이나 ‘제3’이란 항상 강단(講壇)의 먹물들과 ‘왔다 갔다’ 유권자들에게 따라붙는 소리이긴 했지만 한국정치는 결과에 있어선 대체로 “이거냐 저거냐?”로 양극화되기 쉬웠던 까닭이다.

    또 하나는, 한국정치의 핵심적인 쟁점은, 특히 이 시점에선 안보문제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체제냐 그 변혁이냐가 이번 선거의 가장 치열한 결전(決戰)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한에는 ‘중간’이나 ‘제3’은 안보 부문에선 설 자리가 좁다. 예컨대 사드는 배치하느냐 마느냐로 양극화 될 수밖에 없지, 거기 어떤 ‘중간’이란 있기 어렵다. 연대론은 이런 전통적 정치문화 자체를 깨야만 우리 정치의 돌파구가 생긴다는 ‘이상론(?)’을 펴지만 글쎄, 한국 풍토에서 그게 잘 먹힐지? 하기야, 정치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생물이니까...

     거듭 말하지만, 지금으로선 우선 논쟁을 일정기간 더 진행시키며 ‘깨치면서’ ‘평가하면서’ 주시했으면 한다. 한 번 해볼 수는 있는, 그리고 따져볼 만한 쟁점이긴 하기 때문이다. 논쟁이 진지하고 치열할수록 국민적 학습도 된다. 유권자들은 그걸 지켜보며 투표 한 10일~2주 전 쯤 대충 마음을 정하지 않을까?

     
    류근일 2017/3/23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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