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호 목사 /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 이호 목사 /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대한민국은 탄생과 함께 필리버스터를 경험했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3차 유엔총회였다.

    신생국가의 운명을 걸고 국제 연합(UN)의 승인을 얻기 위한 외교전을 펼칠 때 소련과 공산 진영은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네들의 전술이 필리버스터였다.

    소련의 전설적인 외무장관 안드레이 비신스키가 입을 열면 세 시간은 기본이었다.

    그는 한국이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민주주의를 탄압한다고 비난했다.

    우리 대표단의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팔짱을 끼고 노려보자 비신스키가 외쳤다.

    “저기, 미 제국주의와 이승만의 개가 앉아있다!”

    만만치 않은 사나이였던 조병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맞받아쳤다.

    “저기, 스탈린의 개가 짖고 있다!”

    순식간에 국제회의가 개판이 되어버린, 드문 사례이다.

    유엔 총회의 마지막 날까지, 공산 국가들은 발언 순서를 짜놓고 지루한 연설을 계속하여 대한민국의 승인을 막았다.

    그런데 1948년 12월 12일, 팔을 휘두르며 욕설같은 연설을 퍼붓던 비신스키가 15분 만에 갑자기 “어, 어” 하며 목을 감싸 쥐었다.

    한국 승인 문제가 아예 상정도 못되도록 시간을 끌어야할 그가 말을 못하게 되었다.

    그 틈을 타서 우리 대표단은 안건을 상정했다.

    유엔 총회는 찬성 48표, 반대 6표, 기권 1표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이 승인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6.25 전쟁을 “유엔이 승인한 합법 정부에 대한 불법 집단의 침략”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16개 회원국이 군대를 보내어 이 나라를 지켰다.   

    훗날 확인된 바에 따르면 비신스키는 갑자기 치통과 성대 결절로 연설을 중단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례를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으로 해석한다. 


  • ▲ 제 3차 유엔 총회 한국 대표단. 앞줄 왼쪽부터 모윤숙, 조병옥, 장면, 김활란 뒷줄 왼쪽부터 정일형, 김우평, 장기영, 김준구
    ▲ 제 3차 유엔 총회 한국 대표단. 앞줄 왼쪽부터 모윤숙, 조병옥, 장면, 김활란 뒷줄 왼쪽부터 정일형, 김우평, 장기영, 김준구
    가장 유명한 필리버스터로는 1964년 야당의원 구속동의안 상정을 막았던 김대중(金大中)의 발언을 들 수 있다.

    5시간 19분에 걸친 연설 중에 김일성에 대한 언급이 있다.

    “우리가 내놓은 유엔 감시하의 남북한 총선거를 할 때는 김일성이도 이 서울에 와서 시민회관을 빌리고 서울운동장에서 떳떳이 공산주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태를 언제든지 예견을 해야겠습니다.”
    김일성이 서울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사태를 예견해야 한다던 그는 김정일에게 4억 5000만 달러를 불법으로 송금(送金)하고 평양까지 찾아갔다.

    당시 북한의 금융 전문가였던 김광진(金光進)은 김대중이 보낸 자금 중에서 2억 달러가 핵폭탄 개발 등에 쓰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긴 시간의 필리버스터는 은수미의 10시간 18분이다.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연설을 이어간 그녀는 사노맹(社勞盟) 출신이다.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 줄여서 사노맹은 6.25 전쟁 이후 자생적으로 조직된 반체제 불법 조직 중에서 최대 규모로 꼽힌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은수미는 체포되어 6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우리 현대사가 경험한 최초의, 유명한, 최장 시간의 필리버스터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자들의 전략이었다는 점이다.

    신체(身體)에만이 아니라 사상(思想)에도 유전자가 있다.

    수상한 자들은, 하는 짓들이 정말 비슷하다. 
    한글로 지어진 최초의 걸작,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노래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서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많다.”

    민족사(民族史)의 역사는 길고 오래지만, 대한민국사(大韓民國史)는 길지 않다.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려면,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아예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던 자들, 정체성의 뿌리를 흔들려고 했던 자들의 길고 지루하며 상투적인 말장난을 이겨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좌익(左翼)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번영의 꽃을 피우며 통일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우리 시대는 전사(戰士)적 민주주의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