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신변보호' 이유로 황장엽 억압 논란.."미국이 초청 거부" 사실과 달라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대중 정부 당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방미(訪美)행이 불발된 것은 미국 정부가 신변보호를 이유로 초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뉴데일리'가 단독으로 입수한 미 국무부 공식 문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 당시 오히려 황장엽 전 비서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면서 한국 정부 측에 방미를 승인해 줄 것을 권고했고, 우리 정부 측에 황장엽 전 비서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약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정부가 신변보호가 어렵다며 초청 입국을 거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앞서 김대중 정부 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지난 22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황장엽 전 비서의 방미가 불발된 이유에 대해 "황 선생이 방미하려고 했는데, 신변보호 때문에 미국에서 초청을 안 받아줬다. 그래서 못가신 것"이라며 정부가 황 전 비서의 미국행을 막았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특히 박지원 의원은 '황 전 비서의 방미행을 정부가 막은 게 아니라는 말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막을 이유가 있겠는가. 막았다가 어떤 일이 생기려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뉴데일리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미 국무부 공식 문서에는 박 의원의 주장과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돼 있다. 미국 정부가 오히려 황 전 비서에 대한 철저한 신변 보호를 거듭 약속하면서 방미 초청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 미국 국무부 폴라 켈리(Paul V. Kelly) 차관보가 2002년 1월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에게 보낸 공식 서한 문서.ⓒ하태경 의원실 제공
    ▲ 미국 국무부 폴라 켈리(Paul V. Kelly) 차관보가 2002년 1월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에게 보낸 공식 서한 문서.ⓒ하태경 의원실 제공

    폴 켈리(Paul V. Kelly) 미 국무부 차관보는 2002년 1월 당시 크리스토퍼 콕스 정책위원회 의장(당시 공화당 하원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 정부 측에 이번 (황장엽 전 비서의) 초청은 미국의회 의원들과의 회합일정을 포함하고 있는 공식 초청임을 공지할 것이고, 또한 한국 정부 측에 황장엽-김덕홍 두 분의 방미를 승인해 줄 것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특히 "한국 측에 황 선생의 방미와 관련된 관계당국, 즉 지역 및 연방 법 집행당국으로 하여금 적절한 신변보호 조치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자 한다"며 국무부는 또 황장엽 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그의 방미를 둘러싼 제반 상황을 고려해 황 씨의 방미 이전에 위협평가에 착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국무부가 콕스 위원장에게 이런 답신을 보낸 이유는, "한국 정부가 황 전 비서의 신변보호가 어렵다는 이유로 방미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앞서 콕스 위원장과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2001년 12월 미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위원 대상 브리핑 일정과 하원의장단 및 정책위원회 대상 강연 일정을 위해 황장엽-김덕홍 두 분을 공식 초청하면서, 미국 정부가 황 전 비서를 위한 신변보호 조치를 취할 것을 국무부에 요청했다. "'미국정부가 황 선생님을 위한 신변보호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국무부 서한이 제공되도록 해달라"는 수전 숄티 디펜스 포럼 재단(Defense Forum Foundation) 대표의 청원을 받아들이면서다.

    미국 비정부기구 회장이자 대표적인 세계 북한인권 운동가인 숄티 대표는 1997년 황 전 비서가 대한민국에 입국했을 당시부터 황 전 비서의 미국 방문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김대중 정부 집권 5년 동안 황 전 비서의 미국행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황장엽 전 비서의 방미가 좌절된 이유와 당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을 그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셈이다.

    하태경 의원은 최근 황장엽 전 비서의 미국 방문을 누가 막았는지의 논란을 두고 정치권에서 진실공방으로 번지자 숄티 대표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바 있다.

    수전 숄티 대표는 하태경 의원실에 이 국무부 공식 서한을 전달하면서 "미국은 황 선생님의 방미계획을 항상 지지했고 환영의사를 표했으며, 한국측에 황 선생님의 방미를 승인할 것을 권고했다(The United States was always in support and welcoming of Hwang's visit and encouraging the ROK to allow it)"고 밝혔다.

    수전 숄티 대표는 이어 "우리는 2002년 1월에 해당 서한을 확보한 뒤 이를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전했고 한국 정부측에 황 선생님의 방미 승인을 지속적으로 탄원했다"며 "그리고 마침내 2003년 10월 황 선생님의 방미가 이뤄지게 됐다(Once we obtained this letter in January 2002, I shared it with the ROK embassy staff and we continued to press to ROK to allow for his visit which finally occurred in October 2003.)"고 설명했다.
  •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을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뉴데일리
    ▲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을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뉴데일리

    황장엽 전 비서는 국내에 입국한 1997년부터 북한의 실상과 전략을 미국에 전달하기 위해 미국 방문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수전 숄티 대표의 5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 김대중 정부는 황 전 비서의 미국행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고, 황 전 비서는 김대중 정부가 끝난 2003년 10월에야 미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 국무부가 공식 서한을 보낸 시점은 김대중 정부의 임기가 1년 넘게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더구나 박지원 의원은 2002년 4월부터 DJ임기 마지막인 2003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이 황 전 비서의 미국 방문을 의도적으로 가로막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특히 "황 전 비서의 방미 좌절은 미국 정부가 신변보호 때문에 안 받아줘서 못 간 것"이라는 박지원 의원의 주장은 미국 측에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라는 비판과 함께 DJ정부의 황장엽 탄압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정부 당시 북한의 실상과 전략을 미국에 전달하려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방미(訪美)행을 김대중 정부가 막았던 것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가 초청을 거부했던 것인지를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황 전 비서와 함께 망명한 북한노동당 간부출신인 김덕홍 씨의 최근 증언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황 전 비서의 미국행을 김대중 정부가 막았다"는 주장이 재차 제기되면서다.

    지난 1997년 황장엽 전 비서가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을 당시 북한에 우호적인 김대중 정부는 집권 5년동안 신병 보호를 이유로 대외활동 금지 등의 정책을 펴며 황 전 비서를 사사건건 고립시켰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01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왜 황장엽 전 비서가 미국에 못가는가'를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황장엽 전 비서의 신변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지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북한을 의식해 신변보호를 이유로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었다.

    하태경 의원은 미 국무부 공식 서한과 관련해 "이래서 제가 국정조사를 열자고 요구하고 있는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신변보호가 어렵다는 이유로 초청을 안 받아줘서 못갔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라도 국정조사를 열어 '황장엽 억압' 의혹을 낱낱이 파헤치고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 공식 서한에 대한 박지원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박 의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뉴데일리는 수전 숄티 대표에게 '황 전 비서의 방미 초청 추진을 97년부터 2003년까지 몇 번 추진했고, 그 때마다 왜 미국행이 좌절됐는지'에 대해 추가적인 질문을 해 놓은 상태다. 관련 내용은 27일 보도할 예정이다.

    다음은 폴 켈리(Paul V. Kelly) 미 국무부 차관보가 2002년 1월 당시 크리스토퍼 콕스 정책위원회 의장(당시 공화당 하원 의원)에게 보낸 서한을 번역한 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