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시범 케이스 피하려 한동안 만남 자체 꺼릴 것"
  •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등을 금지하는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공무원은 물론 재계도 대응 방안 마련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기업들의 대관(정부‧공공기관 상대), 대언론 등에 대한 접대 행태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대가성과 관련 없이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엄벌하는 데 있다. 공직자와 공직자 부인이 직무 연관성과 무관하게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무조건 형사처벌토록 하고 있다.
     
    음주와 골프 접대는 물론이고 5만원 안팎(대통령령으로 정함)의 식사 제공, 명절 선물도 불법이 된다. 그런 만큼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접대 문화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3일 복수의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단 김영란법 시행으로 정치권과 기업 간 '검은 커넥션'을 끊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한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기업의 한 대관업무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분명 청탁이나 뇌물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공무원, 언론인 등과의 만남 자체도 꺼리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탁이나 뇌물을 주기 위해 만남이 아닌데도 주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건 해도 되는지, 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경영의 불확실성만 커질 수 있다"며 "법 시행 이후 첫 케이스가 무엇 때문에 어떤 법적 처벌을 받는 지를 지켜봐야 정확한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시범 케이스에 걸리면 상상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조심에 조심을 하며 만남 자체를 자제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김영란법과 관련해 별도의 성명이나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대응 전략을 마련에는 고심하고 있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달 27일 윤리경영임원협의회를 열고 김영란법의 입법 동향과 함께 법안이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 바람직한 대처 방안을 공유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윤리경영 시스템의 세밀한 재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백기봉 변호사(김앤장법률사무소)는 "김영란법은 기존 법령과는 달리 기업 임직원이 뇌물 관련 불법 행위를 행할 경우 해당 법인도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 받는 등 처벌이 강화됐다"며 "사내 윤리규정을 정비하고 지속적인 임직원 교육 실시 등 사전 노력을 통해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변호사는 이어 "법안 통과 후 시행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있는 만큼 기업들이 이 기간을 잘 활용해 예방‧적발‧조치 등 부패행위와 관련된 윤리경영 시스템 전반을 재정비하고 사전적 예방을 위한 임직원 교육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경련 윤리경영임원협의회 의장인 김동만 포스코건설 상임감사를 비롯 삼성생명 문상일 상무, 현대카드 김규식 상무, SK하이닉스 김은태 상무 등 윤리경영임원협의회 위원과 관계자 40여명이 참석했다.